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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넘어야 할 거대한 고개 
싱쿠 라(Shinku la, Shingu la, Shingo la, 해발 5050m)를 앞 두고...
여기서부터는 자전거 타는 것은 불가능하다. 조금이라도 짐을 줄여야한다.
나와 15년 넘게 오지 여행을 함께한 텐트와도 어제 밤을 마지막으로 이별한다.

주인 잘못 만나 참으로 고생 많았다.

나와 함께 세계 자전거 여행한 15년지기 텐트

그리고, 남은 식량은 딱 두끼니 분...
오늘 싱쿠 라(Shinku la, Shingu la, Shingo la, 해발 5050m)를 무조건 넘어야 한다.

 

 

길은 시작부터 험난하다.

길은 개울에서 끊겼다.

꼭꼭 껴입어도 추운데.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배낭과 자전거 둘쳐메고 얼름장 같은 계곡물에 발을 담근다.
정말이지 순간 온 발끝부터 머리까지 다 얼어 붙는 듯 온 몸에 냉기가 스며든다.
정신없이 개울을 건너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옷 챙겨입고...정신이 없다.

 

 

어디가 길인지도 모르겠다.

 

 

저 멀리 설산위에 흐미하게 넘어가야 할 길이 보인다.

 

 

또다시 개울이다. 이번에는 깊이도 깊고 물살이 제법세다. 

 

 

얼음장 개울은 계속 나온다.
신발 양말 벗고, 자전거 나르고, 짐 나르고, 다시 말리고 입고...시작부터 힘 빠지고 더디다.

 

 

얼굴 좀 보소, 완전 새까맣게 탔다.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고, 비탈진 길은 눈으로 완전히 덮혀있고, 맨몸이면 별거 아닌 것 같은데.
배낭과 자전거를 메고 넘기가 쉽지않다.
이런 길이 나올 때마다 매번
배낭 넘겨놓고, 다시 와서 자전거 옮기기를 반복하다 보니 체력소모도 많고 영 굼뜨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자전거 멜바를 위한 멜바끈도 만들어서 가져왔는데. 어깨 빠질 것 같다.
어차피 자전거는 타지도 못하는 거, 거추장스런 페달도 제거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그나마 길 위에 눈이 군데 군데 녹아서 길이 좀 보였는데...

 

 

이제는 막막하다. 그냥 눈 짐작으로 대충 저기쯤 길이겠거니 조금이나마 눈이 녹은 곳을 따라 걷는다.
그래도, 천만다행 이런 세상 천혜 오지까지 트레일 코스를 안내해 주는 오프라인 지도앱 맵스미(Maps Me) 앱 덕택에 아직까지는 크게 경로에서 벗어난 것 같지는 않다. 이 마저도 없었다면 어디 길 물을 데도 없고 포기해야 했을 것이다.

추위에 단단히 얼은 것 같은데도 어떤 곳은 푹푹 빠진다. 무릎 넘어까지 빠진다.
한 걸음 한 걸음 온 힘을 다해 힘겹게 내 딛는다.
한 시간에 1키로 전진하기도 힘들다.
이미 옷과 신발은 완전히 젖었다. 동상에 걸리까봐 걱정되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러다가, 순간 눈 속 깊이 가슴까지 빠져 버렸다.
가까스로 탈출하기는 했지만, 정말 아찔하다.

한 걸음 한 걸음 더 조심스럽다. 갈 길이 먼데 시간은 계속 지체된다.
 

 

그나마 이런 바위가 나오면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잠시 쉬어 갈 수 있다.

 

 

한 참을 오른 뒤에 만난 돌무더기 피난 쉼터를 만났다.
아침 일찍 7시도 안되어서 출발하였는데, 벌써 2시가 넘었다.
그런데, 대략 한 5~7키로 정도밖에 못 온 것 같다.
아....
어떻해야 하나.
싱쿠 라(Shinku la, Shingu la, Shingo la, 해발 5050m)까지는 대략 지금까지 온 거리만큼 가야하는데
길은 더 험하고, 경사도 심해지고, 눈은 더 쌓여있을텐데...
밤에야 정상에 빠듯하게 도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참으로 암담하다. 여기에서 포기하고 왔던 길을 일주일 넘게 되돌아 갈 수도 없고.

아직 해가 중천이지만 오늘은 아무래도 여기서 마무리해야 할 듯 싶다.
내일 싱쿠 라를 넘는다고 했던 냠걀도르지라는 친구를 기다렸다가 함께 넘어야 할 것 같다.
일면식도 없는 그 친구가 유일한 희망이다.

 

 

일단 좀 쉬자.
해가 중천인데 움직이지 않기는 처음인 듯 싶다. 

하루 이동거리가 채 10km 안되는 것도 처음이다.
젖은 신발과 옷을 널어 말리고, 천상천하 온세상에 오롯히 나 하나뿐인 이 순간,

홀라당 벗어던지고 먹을 것도 없는데 햇볕이라도 듬뿍 받자!

  
온전한 고독을 즐기자!

천연 얼음빙수도 한 그릇하고

해가 넘어가면서 급 추워진다.
그런데, 여전히 먼 산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 이외에는 할게 없다.
눈 속에 빠질가봐 조그만 바위 위를 벗어날 수도 없다.

 

오늘 하룻밤 지샐 쉼터의 내부
누추하지만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이런 곳 조차 없다면 나는 이미 얼어 죽었을지도 모른다.

부디 내일 아침 일찍 냠걀도르지가 이 앞을 지나가길 진심으로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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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라다크 자전거 여행 - 23_1_무모한 도전 (Shinku la, 505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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