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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려면 한참 남은 이른 시간에 잠이 깼다.
뭐, 깊이 잠이 든 것도 아니지만, 다시 잠이 올 것 같지도 않다.
2미터*1미터 김장비닐 한 장 위에 마련한 잠자리.
그 좁은 공간을 벗어나는 순간 눈으로 수북히 덮힌 차가운 대지가 기다리고 있다.
이 황량하기 그지 없는 설산에서 밤새 내 체온으로 덥혀진 유일한 안식처인 침낭 밖으로 나설 마음이 선뜻 안든다.
하지만, 어여  일어나라!
이 여행의 종지부 싱쿠 라(Shinku la, Shingu la, Shingo la, 해발 5050m)를 넘어야 한다.

밤새 동상은 안 걸렸는지, 발가락부터 잠을 깨우고 꼼지락 꼼지락 일어날 준비를 한다.
최후의 결전을 위해 아껴두고 아껴둔, 마지막 남은 멸치국수로 끼니를 떼우고
돌무더기 쉼터 밖으로 나왔다.
이제는 또, 하염없는 기다림이다.
인도에서 시간 정함 없는 기다림은 그냥 기본이다.

과연, 오늘 유일한 희망인 남걀 도르지가 여기를 지나갈 것인가?
알 수 없다. 전화라도 되면 물어보기라도 하지.
눈으로 뒤덥혀 보이지도 않는 어제 올라왔던 길을 바라보며 기약없이 남결 도르지를 기다리는 사이 해가 떴다.

그렇게 6시30분 까지 2시간 남짓 기다렸는데도
아무런 기미가 안 보인다.
이 세상 오로지 나 혼자 뿐인 이 공간. 시간이 멈춘 듯 평온을 넘어 침묵의 고요하기 그지 없다.

이제 정말로 결정을 해야 한다.

목숨 걸고 싱쿠 라를 넘을 것인가?
여기에서 포기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 갈 것인가?

이성은 후자를 선택하라고, 되돌아 내려가라한다.
하지만 감성은 하얀 눈으로 덮힌 저 위를 바라본다.

무모한 줄 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수많은 역사는 무모한 도전에서 시작됐다.

결코 쉽지 않으리라.
하지만 내 길은 내 스스로 개척하기로.

살다보면 이런 참으로 극복하기 힘든 길을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길을 그냥 묵묵히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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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길과 마주할 때는 
오로지 그 상태 그대로 전력을 다해야 한다.

물론 그런 자신의 진심과 열정의 성의를 전력으로 표한다고 해서
누그러들것이라는 교만어린 부용도 허락되지 않는다.

괴로움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길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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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레디레님의 블로그 글 중에서..

 

힘은 들지만 그래도
2시간에 대략 2키로 정도의 속도이다.
이 페이스로 가면 대략 점심 때쯤은 정상에 다다를 수 있을 것 같다.


허나, 저기 어디 쯤 넘어야 할 것 같은데. 
길이 하나도 안 보인다.
경사로에 여기저기 흩어진 눈 덩어리들이 혹시나 눈사태나 일으키지 않을 까 겁난다.

 

 

 

현재 고도 대략 4800m 
한 걸음 한 걸음 숨이 차다.

그 때 저 멀리 하얀 설원 능선 끝에 희끄무레 움직이는 무엇...

세상에
사람과 야크무리다. 이렇게도 반가울수가...
하지만, 뜬금없이 이 설산위에 길도 없는데, 야크 무리 행인이라니...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아마도, 겁대가리 없이 이 길을 나섰을 때...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참아 냅둘 수 없어 보내신 듯 하다.

서로 가는 길이 반대 방향이라 엇갈리지만,
자기들 발지국 따라가면 된단다.
됐다! 됐어!!

 

이 때만 해도 모든 게 다 해결된 줄 알았다.
하지만,
날 기다리는 급경사..
도저히 무거운 여행짐을 메고 넘을 수 없는
급경사.


그리고 사방 팔방 둘러 보아도 끝도 없는 설산.
봄날 응달에 덜 녹은 눈 마냥..
수만년 시간의 역사을 품고 있는 빙하가 떡허니 버티고 있다.

 

 

 

어느덧 고도는 5000m에 거진 다다르고,
고도가 높아지면서, 그냥 숨 쉬기 조차도 쉽지 않다.
이제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듯 싶다.
좀 만 더 버티자.

그러다, 무거운 한 걸음 내 딛는 순간
갑자기 눈 속 깊이 푸욱 빠져버리고 말았다.
거의 가슴 높이 이상 빠져서
허우적 대며 자전거에 매달려 간신히 눈 구덩이에서 빠져나와 살아남기는 했지만,
이제 한 걸음 한 걸음 내 디딜 때 마다 겁나고
길을 확인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기에 
그렇지 않아도 더디고 힘든데

아,
진짜로 끝날 때 까지 끝난게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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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라다크 자전거 여행 - 22_온전한 고독 (Gonbo Rangjon)

마지막 넘어야 할 거대한 고개 싱쿠 라(Shinku la, Shingu la, Shingo la, 해발 5050m)를 앞 두고... 여기서부터는 자전거 타는 것은 불가능하다. 조금이라도 짐을 줄여야한다. 나와 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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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 : 인도 라다크 자전거 여행 - 23_2_길을 잃다. 삶과 죽음 사이 (Shinku la, 5050m)

 

인도 라다크 자전거 여행 - 23_2_길을 잃다. 삶과 죽음 사이 (Shinku la, 5050m)

눈 속 깊이 빠져서 자전거 덕에 간신히 빠져 나왔지만 어디에 구조 요청도 못하고,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질 수 도 있다는 두려움에 발 길이 잘 안 떨어진다. 그래도 정신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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