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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 깊이 빠져서 자전거 덕에 간신히 빠져 나왔지만 
어디에 구조 요청도 못하고,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질 수 도 있다는 두려움에 발 길이 잘 안 떨어진다.

그래도 정신 가다듬고 다시 길을 나선다.

 

저 언덕 넘어로 아무것도 안 보인다.
이제 거진 정상(Shinku la, 5050m)에 다다른 듯 싶다.

 

아, 드디어 싱쿠라 (Shinku la, 5050m) 올라서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남걀 도르지 기다리다 마지막 끼니 떼우고
6시 30분 출발하여 
이동거리는 고작 3~4키로 밖에 안되는데.
거의 6시간이나 걸렸다.

 

아무리 둘러봐도
세상에 살아 있는 생명이라고는 오로지 나 하나!!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힘들게 오른 정상이지만.

감상에 젖어서 지체할 수가 없다.

이제는 내리막이라고 하지만, 자전거 타고 신나게 내려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이제는 먹읆거리 하나도 없다. 텐트도 없다.

더 이상에게 신에게 행운을 빌 수도 없다.

살아 남으려면 쟌스카 섬도(Zanskar Sumdo)까지 무조건 내려가야 한다.

이 시절에는 쟌스카 섬도에도 아무도 없을 것 같지만.

최소한 추위와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움막이라도 있겠지.

 

쟌스카 섬도(Zanskar Sumdo)까지는 대략 20km...
현재 시작 12시 30분
눈만 아니면 내리막 20km는 아무리 비포장 도로라도 해도 순식간인데.

나는 왜 이 험난한 시절에 와서 고생하고 있단 말인가!!!

 

얼굴이 완전히 새까맣게 타버렸다.
아무리 모자 쓰고 버프 해 봤자 소용없다.
땀이 줄줄 흐르는데도 따가워서 만질 수도 없다.

어여 내려 가자!

 

저 멀리 내려가야 할 눈 위에 미세하게 흔적이 있다.
그래도 야크와 목동이 남겨 놓은 길을 따라 내려가면 되니 얼마나 천만다행인가....

 

야크와 목동의 흔적을 따라 한 참을 내려 가는데
발자국 흔적이 없어졌다.
나의 오판이다.

얼굴도 태워버리는 따가운 햇볕인데.
눈 위에 발자국쯤이야 순신각에 지워버릴 수 있는 것을

갑자기 급 경사 계곡길에서 흔적이 끊겨버렸다.
너무나 암담하다.

 

무엇 때문에 저 거친 파도 속으로 몸을 던지는가
담대했던 다리와 심장이 풀렸다
과연 살아 날 수 있을까?
나는 왜 무모한 선택을 했던가
몸이 피로해 지면 마음도 풀린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
이 때가 중요하다.
몸의 피로가 극한에 이르면 굳센 의지도 풀리고
순간 눈을 감고 싶어진다.
이내 저승사자가 오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생명력은 집요했다.
조금만 참고 견디자!

- 오디세우스 -

여기서 멈추면 나는 죽는다.
눈이 완전히 녹을 때까지 아무도 나의 죽음을 알 지도 못한다.
가야 한다.
지체할 수 없다.

 

죽을 수도 있다는 극한의 공포 속에 계곡길을 내려오다 보니 
저 멀리 원래 길이 보인다.
이렇게까지 눈이 안 쌓였다면 저 내리막 길로 신나게 내려왔을텐데.
계곡에서 어서 빠져 나가 저 길과 만나야 한다.

 

아...저 만치 길이 보인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다.

 

원래 길에 힘들게 올라 섰지만
자전거 못 타기는 별반 다를게 없다.
자전거를 끌고 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져 고마울 따름이다.

 

 


눈이 이렇게 까지 쌓이지 않았다면 원래 길은 주황색인데,
길이 안보여 파란색 계곡길따라 내려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지만 매우 위험천만한 행동이었음

 

해가 저버렸다.
이제 곧 어둠이 찾아 올텐데...
끝이 안 보인다.

 

드디어, 저 아래 쟌스카 섬도(Zanskar Sumdo) 보인다.
'살았다' 
인내의 경계를 넘는 어느 순간
멘탈붕괴로 내 자신이 살아 있음을 종종 확인해야 한다.

이후 완전히 어둠이 내려 
이번 여행 처음으로 플래쉬 켜고 위험한 길을 내려간다.

캄캄한 밤에 그냥 불빛이 보이는 곳으로 향한다.
이 시절에 관광객도 전혀 없는데 당연히 식당 같은게 있을리 없다.
BRO(인도 도로 공사)의 노동자 천막이다.
극한의 땅을 뚫고, 메꾸고, 길을 만들고 잇고
무너지면, 다시 만들고...그렇게 길에서 평생을 보내는 고마운 노동자들이다.

천막에 들어서니 다들 여성 노동자들이다.
염치없지만, 하루 신세 부탁한다.
이 늦은 시간에 낯선 털복숭이 외국인이 불쑥 나타나얼마나 당황했을고
하지만, 밥도 챙겨주고, 엉망진창 진흙투성이 더러운 몰골인데도 잠자리도 마련해 준다.
너무나 고맙고 고맙다.

이렇게 오늘도 살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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