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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 30분, 너무나 이른 시간에 잠이 깼다.
예전 서티벳 자전거 여행할 때도 그랬지만,
고도가 높아서인지 깊은 잠 들기가 쉽지 않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밖은 캄캄하고, 춥고 할 수 있는게 없다.
다시 잠을 이루려고 해도 잠이 올리 없다.
도대체 지금 나는 내 이런 곳에서 이러고 있는 것일까? 
그저 날이 밝을 때까지 그레고리 잠자처럼 하나의 벌레가 되어 침낭속 버티기에 들어간다.

새벽 어스름
어제 밤 나에게 침대를 내준 친구가 맨바닥에서 잠들어 있다.
아이고, 미안하고 고맙다.

조금이라도 얼른 나가주는 것이 객의 의무이고 예의이라...

조용히 주섬주섬 짐 챙기고 나그네는 또 길을 나선다.
6시 30분.

BRO(인도 도로 공사)의 노동자 천막들
어제 밤 저들이 아니였으면 아마도 난 살아남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참으로 고맙소.

 

어제의 흔적 조차 찾기 힘들었던 험난했던 길에 비하면 이런 비포장 길은 참으로 무난하다.
눈길에 푹푹 빠져 흙탕물로 축축하게 젖은 신발대신 슬리퍼 신었더니 페달링이 불안전하다.
그래도 하늘이 도우사 무사히 싱쿠라 (Shinku la, 5050m)를 넘게 되어 급할 게 없다.
더군다나 오늘은 대체로 내리막 50키로 정도만 가서 킬롱가서 쉬자!

 

 

해가 골짜기에 드니 이렇게 평화롭고 아름다울 수가 없다.
하루하루 어제와는 딴판으로 변화하는 풍경들
이게 아마도 자전거 여행의 묘미 아닐까 싶다.

 

 

유월인데도 기나긴 겨울동안 쌓인 눈이 아직도 녹아 내리며 도로가 유실된 곳이 많다.

 

 

드디어 만난 마날리~레의 메인 도로이다.
왼쪽으로 가면 레
오른쪽으로 가면 마날리

원래 계획대로이면 스피티밸리 여행 후 레까지 여행 후
쟌스카 밸리를 넘어 여기서 도달했어야 했는데
계획대로 되는 인생도, 자전거 여행도 얼마나 있겠는가.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으로 
왼쪽으로 틀어 다시 레로 갈까 아주 순간 잠시 망설이다가, 
바로 오른쪽으로...
이미 울트라 마라톤을 뛰고 난 후인데...다시 바로 풀 코스 마라톤 뛸 체력도 의욕도 사라지고 없다.
그리고, 무언가 남겨 두어야 다음이 있지 않겠는가!

 

 

얼마만에 먹어보는 사먹는 음식인가.
150루피라는 가격대비 너무나 형편없지만...사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볕도 좋고, 이제는 급할 것도 없고
진흙탕으로 더러워진 신발이며, 양말..빨래하고, 자전거 세차해 주고.
따스한 햇볕 만끽하며 망중한을 한 껏 누린다.

 

 

얼마가지 않아 체인에서 스윽스윽 소리가 난다. 
자린고비처럼 아껴쓰던 마지막  체인오일 한 방울 안 남기고 체인마디에 한방울 한방울 발라주고 출발
참으로 묘하게도 가진 모든 것을 다 소진하고 나니 자전거 여행을 마치게 되는 듯 하다.

 

 

마날리~레 구간도 힘든 코스이기는 하지만,
쟌스카 밸리에 비하면
이 곳을 찾는 여행자가 많아서인지, 도로상태도 양호하고, 중간중간 캠핑장과, 숙박시설, 가게, 식당 등 제법 여행 편의시설이 곳곳에 있다.
혹시 나중에라도 이 곳을 자전거 여행하고자 하는데 여행짐 챙기는 것 때문에 망설여 진다면
굳이 캠핑 장비는 안 챙겨도 큰 무리가 없을 듯 싶다.

 

 

맵스미 어플에서는 거의 내리막이라더니 역시나 속았다.
뭐, 계속 오르막 내리막의 연속이다.
이제는 그냥 무덤덤하게 오르고 내린다.

 

 

이 번 여행에서 처음 만나는 스페인에서 온 자전거여행자.
복장이며, 짐 정말 단촐하다. 동네 마실 나온 느낌이다.
더군다나 전기 자전거이다.
전기 자전거를 끌고 와도 될 만큼 이 구간은 편하고 여행하기 좋은 곳이다.
여느 자전거 여행자들의 만남처럼 서로의 정보를 교환한다.

로탕패스가 드디어 오픈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한다.

더군다나 킬롱과 마날리간 버스도 운행하기 시작했단다.
불과 이주 전에 완전 눈 덮인 설산을 힘겹게 넘으며
이 길이 뚫리려면, 한 달은 걸릴 줄 알았는데
참으로 원더풀하다.

 

서둘러야 겠다.
킬롱에서 하루 묶을 생각이었는데, 변변한게 없는 킬롱보다
오늘 안에 여행자의 낙원 마날리에 들어갈 수도 있겠다.
제기랄 아침밥 먹으면서 괜히 늑장 부렸다.
마날리에 가서 빨리 맛있는 요리도 시켜먹고,
따뜻한 물에 샤워도 하고 싶다.

 

 

 

저 앞에 참으로 사연 많은 킬롱이 보인다.
부랴부랴 이미 익숙한 버스 터미널로..
하지만, 마날리행버스는 11시 30분에 이미 출발했단다.
내가 도착한시간 11시 40분 이런 맙소사.
마날리에 빨리 가서 쉬고 싶은 마음에 쉬지 않고 달려왔는데
역시나 세상사 한치 앞을 알 수 없고, 내 맘대로 쉬이 다가오지 않는다.
겸허해야 한다.
오전에 해찰만 안 부렸어도...

 

 

하지만, 분명 또 다른 스펙타클한 운명이 날 기다리고 있으리라.
그냥 원래 계획대로 킬롱에서 하루 밤 보낼까 싶기도 했지만.
이미 마음은 마날리에 가 있다. 로탕패스의 아래 마을 콕사로 향한다.
아쉽게 마날리행 버스도 놓쳐서 기운도 빠진데다 킬롱부터는 오르막인지라 페달링에 힘이 안 들어간다.
참으로 힘겹게 넘었왔던 로탕패스를 다시 자전거로 넘을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는지라.
히치하이킹하기로 한다.
자전거 타다 서다 히치하이킹 시도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 한 대 멈춘다.
근데, 이게 누구야!
세상에 마날리에서 내게 큰 도움을 준 자전거 가게 주인 아닌가!
이런 인연이 있고, 이리 반가울 수가...
하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마날리 안가고 내일이나 모레 마날리로 넘어간단다.
원래 고향이 여기라서 어머니 뵈러 왔다고 한다. 
아쉽지만 마날리에서 또 보기로 하고 헤어진다.

 

 

다시 길을 나서는데...
얼마 안가 나타난 고개길,
이제는 그냥 만사 귀찮고 힘겹다.
그냥 길가에 자전거 세우고 주저앉자 본격적으로 히치하이킹 시도.
자전거 여행자에게는 히치하이킹도 그리 편한 거는 아니다.
그렇게 1시간 넘게 시도한 끝에 1시30분에야 성공

 

 

얼마 가지 않아 콕사에서 본격적으로 시작 된 로탕패스 오르막길.
역시나 예상 했던대로 오픈된지 얼마 안되서 완전 진흙길에 길상태 최악이다.
거친 비포장 길 만큼이나 시끄러운 인도 음악, 인도어로 열심히 무언가 나에게 묻고 떠드는 운전기사 정신이 없다.
하지만, 힘겹게 넘어왔던 길을 편안하게 차에 앉아 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고 좋다.
이 얼마나 편안한가..
역시 차로 넘기로 결정 한거는 참 잘한거야!
이렇게 힘든 길을 왜 자전거로 넘었단 말인가!

 

 

로탕패스 넘자 마자 교통체증으로 길이 막힌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런 곳에서  교통체증이라니..
가족에게 소식 못 전한지 벌써 일주일이 넘어가서 한시라도
빨리 아내에게 소식 전하고 싶은데 아직도 핸드폰도 불통이다.
길만 진흙탕 아니여도 당장이라도 차에서 자전거 내려 타고 싶은데
도저히 저런 진흙길에서 또 다시 뒹굴고 싶지 않다.

 

 

점점 심해지는 교통체증으로 이제는 아예 차가 움직이도 못한다. 해는 지기 시작하고,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다.
난감하네. 더 이상 지체하다가는 밤에 마날리에 도착할 듯 싶다. 한 밤 중에 비 맞으며 터미널에서 올드 마날리 오르막 오를 생각하니 역시나 까마득하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자전거 내리고, 비 속을 달린다. 점점 빗줄기도 거세지고 천둥 번개까지, 허허 설상가상 첩첩산중이다.
마날리의 진입 환영인사 치고 참 거하다.
역시나 여행은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닌가 보다. 

 

 

결국 해가 지고 어둠이 완전히 내린 후에야 아니타 롯지(ANITA LODGE) 도착
2주만에 방값이 2배나 올라지만, 무조건 오케이다. 따뜻한 샤워와 깨끗하고 편안한 침대만으로도 그냥 행복하다.
드디어 근 나흘만에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나니 세상에 이런 낙원이 없다.

그리고, 내 입맛에 맞는 음식 같은 음식, 환상적인 국밥까지
고진감래로다.
역시 마날리는 여행자의 낙원이다.

 

 

◆ 맺음말 ◆
이것으로 기나긴 라다크 자전거 여행기를 마치려 합니다.
그동안 부족한 글에 정성스런 댓글과 성원해 주신 많은 분 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표합니다.

 

이전편 : 인도 라다크 자전거 여행 - 23_2_길을 잃다. 삶과 죽음 사이 (Shinku la, 5050m)

 

 

인도 라다크 자전거 여행 - 23_2_길을 잃다. 삶과 죽음 사이 (Shinku la, 5050m)

눈 속 깊이 빠져서 자전거 덕에 간신히 빠져 나왔지만 어디에 구조 요청도 못하고,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질 수 도 있다는 두려움에 발 길이 잘 안 떨어진다. 그래도 정신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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