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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라다크 자전거 여행 - 11. 파란만장한 여정(Khoksar~Manali)






어제 내린 눈으로 아침 공기가 제법 선뜻하다.

로탕 라(Rohthang La, 해발 3980m)를 넘어오기 전 그저께 마날리(해발 1900m)에서는 반팔로 다녔는데, 해발 3000m가 넘으니 옷을 껴 입어도 춥다.

어제 고개를 넘으며 맞은 눈 보라에 젖은 신발과 옷 들이 마르지 않아 하루는 쉬어야 할 것 같은데, 

전기도 안들어고 먹을 것도 없는 여기 보다, 좀 더 큰 마을인 킬롱(Keylong)까지 버스로 이동하여 하루 쉬기로 한다.

뭐, 먼 거리도 아니고, 자전거 타고 가면 한나절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이지만...

어차피 이 구간은 쟌스카를 넘어 레로 들어간 다음 레에서 빠져 나올 때 다시 와야 할 길이다.

지금은 길 상태도 매우 안 좋고, 진흙탕에 빠진 신발도 마르려면 하루 이상 걸릴 것 같고...그렇다고 진흙탕 길을 슬리퍼 신고 건너가기는 싫고...

이 번 여행의 정점인 험난한 쟌스카의 여정을 앞 두고 체력 안배를 위해 편안히 킬롱(Keylong)가서 맛있는 것도 푹 쉬고 싶다.














버스는 아침 7시30분에 한대, 오후에 한대

어쩐 일로 제 시간에 도착한  버스 위에 자전거 싣어 주고...

지금 생각하면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싣었는지...

참 안일했다. 최소한 세점을 버스에 묶어 주어야 했는데...

여의치 않아서 싯포스트와 핸들바만 버스에 묶었으니...





버스는 느릿 느릿 평화롭게 눈으로 둘러싸인 길을 잘 가고 있었다.


그러던중...


갑자기 쿵소리가 났다.

이 때까지만 해도 난 버스가 고장 난 줄 알았다.

그런데, 뒷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바이시클...바이시클...외치는 것이다.

버스는 멈췄고...

정신없이 버스에서 내린 나는 도로 한 가운데 덩하니 떨어져 내 자전거와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는 자전거에 붙어 있었던 짐들을 보고 망연자실.

정신이 아뜩하다.

이런, 맙소사...

세상에...

정신없이 부랴부랴 흩어진 짐들(특히 나사)을 수습하는데, 

다들 도와 주면서도 빨리 빨리 재촉한다.

인도 답지 않게 이럴 때는 빨리 빨리 라니...ㅎㅎㅎㅎ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고라 아무 생각이 없다.

하도 정신이 없다 보니 지갑이 버스좌석 밑에 떨어진 줄도 모르고, 지갑 잃어 버렸다고 찾다가 다시 한 번 호들갑...멘붕 2탄..


그 아름다운 라훌의 버스 밖 풍경이 하나도 안 들어온다.

어쩌지?

위험을 무릅쓰고 넘어온 로 탕라를 나 홀로 부서진 자전거를 끌고 다시 넘어 마날리로 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부서진 자전거를 가지고 쟌스카를 넘어 가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고.

타크랑 라(Taglang la, 해발 5330m) 넘어 레로 넘어 가는 것도 역시 눈으로 고개가 막혀 대중교통 이용 불가...

아....

그냥 이대로 시간이 약이라고

봄 볕에 눈이 녹아 길이 열릴 때까지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물러 날 수도 없이

완전히 라다크 오지에 갇혀 버렸다.


비우자...

이미 엎지러진 물..

그 누구도 다시 되돌릴 수도 없다.

지금 당장은 이것이 시련 같아도,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여행을 다 마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결국 이 작은 일련의 사건이 나의 목숨을 구했다.)


일단 킬롱가서 쉬면서 생각해보자.



< 길을 수선하면서 가는 버스 >





킬롱에 도착하여 정신 안정시키고 자전거의 상태를 점검하는데. 

달리는 버스 지붕에서 떨어진 것 치고는 많이 부서지지 않았다.

천만다행이다.

떨어지면서, 안장부터 떨어졌는지

싯포스트는 부러졌지만, 안장은 안장레일과 분리 되었으나 수선가능할 것 같고.

코펠이나 물통, 스템 가방 등이 좀 찌그러졌으나 사용에 지장 없을 것 같고...

짐받이는 나사만 다시 조립해 주면 될 것 같다.

아쉽게도 정수물병은 분실하였으나, 뭐 이제 인도 물에 위장도 어느정도 적응한 것 같으니 괜찮을 듯 싶다.


그런데...부러진 싯포스트를 어쩌지?

빠지지도 않는다. 여기서는 수리도 교체도 힘들 것 같고, 마날리로 다시 가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마날리로 돌아 가지...?





일단 어제 저녁 이후 아무것도 안 먹어서 허기진 배부터 채우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냥 막연히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는데,

청년 둘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말을 걸어 온다.

그래서, 이런 저런 나의 사정을 말했더니...

너무나 쉽게 버스 타고 가면 된단다.

무슨 개소리여... 로탕 라가 막혔는데...라고 했더니

내일 선거가 있어서.

한시적으로 오늘 딱 하루만 공사 중인 로탕 터널를 지나갈 수 있단다.

설마...

그래서, 부랴 부랴 알아보니 사실이었다.

다만, 로탕 터널을 지나려면 허가가 필요하단다.

허가를 받으려면 어디 어디 가서, 도움을 요청하고, 뭐 어쪄고 저쪄고...

천만 다행으로 한국에 연수왔던 경험이 있는 킬롱의 시장(?)의 도움으로 우역골절 끝에 허가서를 받고,

(나는 정신없고 한시가 급한데, 자기 서울 연수왔던 핸드폰 사진 보여주면서 어찌나 느긋하신지...^^)

산악구조대요원이 로탕 터널이 시작되는 시수(Sissu) 까지 무사히 안전하게 태워다 주고, 

거기 책임자에게 이 이방인 잘 부탁한다고 말도 잘 해 주고, 고맙습니다.









< 시수(Sissu)  로탕 터널 입구 >




< 마치 피난민처럼 60~70년대 트럭에 실려서 >




< 드디어 로탕 터널 속으로 >

나 뿐만 아니라 다들 로탕 터널을 처음으로 지나가는지 사진, 동영상 찍고 난리도 아니다.

하지만, 내 경험상 이런 군사 목적의 시설물에서는 사진 같은 거 안 찍는 것이 좋다. 찍더라도 아주 조심 조심. 

결국, 대 놓고 사진이랑 동영상 찍은 저 아저씨는 터널 중간에서 핸드폰 압수당하였다. 

설마, 빼았을까 싶었는데, 차 세우더니 고함 치고 압수해 가 버렸다.

휴 큰일 날뻔 했다.




< 로탕 터널 안 >

트럭은 매연을 내 뿜으며 이런 어두컴컴한 길을 2시간 남짓 털털 거리며 달렸다.




< 로탕 터널 지나 >

드디어 긴 터널의 여정 끝에 마날리 쪽 솔랑밸리(Solang Valley)





여기서 부터 마날리까지는 쭈욱 내리막...

앉으면 똥침이다.





마날리의 교통체증이 다 반갑다니...ㅎㅎ

















올드 마날리의 숙소(비시즌이라 하루 400루피,약 6500원, 시즌에는 곱절 값에도 방이 없었음)에서 바라본 마날리의 아름다운 풍경들...

난 마날리로 돌아 오는 길에서 아무것도 안하기로 했다.

하루를 아무 생각없이 아주 편안하게 보내기.

느러지게 자고 일어나, 독일빵집에서 모닝커피에 치즈케익(대략 150루피 내외, 2500원 내외)으로 아침 먹고,

침실 바로 앞에 의자 펴 놓고 햇볕 바라기...

맛있는 점심 아낌없이 먹기, 저녁에는 치킨 탄두리나 꼬치와 맥주 마시기...

아. 

이렇 듯

자전거 여행을 포기하려고 할 즈음...

입맛에 맞는 음식은 몸과 영혼을 따뜻하게 위로해 주었다







 < 스페셜 생큐 투 cafe ethic >


아마도 이 카페의 영혼을 위로해 주는 요리가 아니였다면 자전거 여행을 포기했을 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마날리에 여행할 기회가 있으시다면 꼭 방문해 보길 추천하고 싶다.

주인 마담이...한국말 매우 잘 하는데 영어로 대화함..ㅎㅎㅎ




< 한없이 느긋하게 가방끈을 수선하는 아저씨 >

다시금

길위의 자전거 여행을 위해 이것 저것 수선을 시작한다.




< 스페셜 생큐 투 BIKEBAR >

이 자전거 가게의 도움으로 싯튜브에 박혀 안 빠지는 부러진 싯포스트도 뺄 수 있었고, 내 자전거 맞는 싯포스트 구하러 멀리 Kullu까지 직접 가서 구해다 주고,

유심도 구입하는데 큰 도움주고, 덕분에 자전거 여행을 다시 시작하여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이틀간의 달콤한 휴식은 나를 다시금 길 위에 설 수 있게 해 주었다.

자전거 여행을 접고 배낭여행으로 전환할까도 싶었지만

역시 나는 자전거 위에서 바람을 가를 때 제일 행복하다.

 

자! 이제 다시 길을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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